명의신탁과 횡령죄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 변경

“변호사님! 어제 뉴스에 명의 신탁해 놓은 부동산 팔아도 처벌 안 된다고 하는데, 대물로 받은 아파트를 직원명의로 해 둔 것은 어떻게 하지요?” 평소 자문하는 건설업체 대표의 다급한 전화였다. 상가를 지어줬는데 건물주가 공사대금을 못 갚아 대신에 건물 일부를 받았고, 사정상 그 부동산을 회사가 아닌 직원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해뒀다는 것이다. 문제는 종전에는 대법원이 이와 같은 경우 직원이 명의 신탁된 부동산을 처분할 경우 횡령죄로 처벌했지만, 최근에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해서 직원이 그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서 돈을 빌리거나 팔아버려도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났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하소연이었다.
 
판례가 변경된 것은 맞다. 사건을 요약하자면 A씨는 2004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충남 서산에 있는 토지를 4억 9천만 원에 구입했다. 비용은 A씨가 1억 9천만 원을, 피해자 B씨를 포함하여 4명이 3억 원을 부담했다. 그런데 편의상 토지의 소유권에 관한 등기를 매도인에서 전부다 A씨 앞으로 해 두었다. 문제는 그 후 생겼다. A씨는 B씨의 허락을 받지 아니한 채 2007년 6천만 원을 빌리면서 토지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었다. 이를 안 피해자 B씨가 A씨를 횡령죄로 고소를 했다. 재판에 넘겨진 A씨 대해 대전지법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6년 5월 19일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14도6992).
 
이번 판결은 부동산 매수자(A)가 본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지 않고 등기를 매도인에게서 명의수탁자(B)로 곧바로 이전하는 이른바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의 경우, 수탁자(B)가 신탁부동산을 마음대로 처분해도 형사처벌 할 수 없다는 취지다. 횡령죄로 처벌하던 기존 입장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판례 사안은 토지 공동 매수자(A)가 다른 공동 매수자 지분에 까지 임의로 근저당권을 설정한 경우지만, 건설업자가 대물로 변제받은 상가나 아파트를 회사 임직원에게 등기해 준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해석된다.
 
대법원이 횡령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횡령죄와 부동산실명법에 대해 알아야 한다. 형법상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경우 성립한다. 그리고 부동산실명법은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을 실제 권리관계에 일치하도록 등기하게 함으로써 투기나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원칙적으로 부동산 명의 신탁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 처벌한다.
 
일단 횡령죄가 성립하려면 ‘남의 재물을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A씨가 과연 타인의 재물을 보관한 자인지, 즉, 토지를 샀으나 자신의 앞으로 등기를 하지 않고 A씨 앞으로 바로 등기를 한 B씨가 토지 소유자라고 볼 수 있는지 문제된다. 결과적으로 부동산을 산 사람이 자신의 앞으로 등기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민법상 부동산 ‘소유자’라고 볼 수 없다. 또한 명의신탁약정은 부동산실명법에 따라 무효다.
 
그런데 만약 이 사건에서 명의수탁자, 즉 이름 빌려준 사람인 A씨를 형사 처벌하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자, 즉 이름을 빌린 사람 B를 보호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법률이 금지하고 처벌하는 명의신탁관계를 오히려 유지하고 조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대법원은 종전 판례를 변경하면서 명의수탁자인 A씨를 형사 처벌할 필요도 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가 임의로 신탁 받은 부동산을 처분해도 형사 처벌되지 아니할까? 그것은 아니다. 만일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되어 있던 부동산을 누군가에게 명의신탁(이른바 양자 간 명의신탁)했는데, 명의수탁자가 함부로 부동산을 처분했다면, 횡령죄가 성립한다. 결국 명의신탁자가 자신의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해 둔 적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횡령죄의 성립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해서 부동산을 사면서 자기 앞으로 등기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름 빌려준 등기명의인(명의수탁자)이 부동산을 마음대로 처분해도 횡령죄가 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부동산실명법의 입법취지를 존중해 명의신탁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를 줄였다고 해석된다. 나아가 이번에 문제된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에서 횡령죄가 부인된 이상 양자 간 명의신탁 역시 횡령죄를 인정할 근거도 약해졌다. 따라서 양자 간 명의신탁의 경우도 조만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견해로 판례가 변경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결국 부부간 명의신탁, 종중이나 종교단체 명의신탁 등 부동산실명법상 유효한 명의신탁의 경우에만 횡령죄나 배임죄가 인정되고, 그 이외 무효의 명의신탁의 경우는 횡령이나 배임죄가 부인되는 방향으로 운용될 것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지금 부동산을 남의 명의로 신탁을 해 둔 실소유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신뢰관계가 확실하다면 명의 신탁자가 땅문서나 집문서를 직접 보관하는 등의 방법으로 명의신탁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고, 가압류 등 보전처분을 해 두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실명법의 취지에 맞게 부동산을 실권리자 명의로 등기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 것은 분명하다.
 
만일 수탁자가 신탁자에게 이전등기를 거부할 경우에는 어떻게 반환받을 수 있을까? 명의 신탁자가 부동산의 소유권을 넘겨오기를 원한다면, 매도인을 대위하여 무효인 수탁자 명의 등기의 말소를 구하고, 아울러 매도인을 상대로 매매계약에 기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하면 된다. 다만 양자 간 명의신탁의 경우에는 원소유자가 신탁자이므로 수탁자를 상대로 직접 원인무효로 인한 이전등기 말소소송을 구하면 쉽게 소유권을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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