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사과 끌어낸 김어준…황교익 자진사퇴하게끔 한 이해찬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좌)와 친여 성향 방송인 김어준씨(우). 사진 / 땡큐뉴스DB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좌)와 친여 성향 방송인 김어준씨(우). 사진 / 땡큐뉴스DB

[땡큐뉴스 / 김민규 기자]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내정됐던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논란 끝에 후보직을 자진사퇴하는 것으로 사태가 매듭지어지고 있지만 여당 내홍 요소로 확대될 수도 있었던 이번 사태를 사실상 수습한 일등공신이자 ‘막후’는 방송인 김어준 씨와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라 할 수 있어 그들이 각각 친문과 친이재명계의 실세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앞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황씨 간 설전이 격화된 끝에 양측 갈등이 봉합될 가능성이 희박하던 지경이었음에도 지난 19일 친여 성향 방송인인 김어준씨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재명 경기지사도 이 전 대표도 곤란한 상황이 됐다. 이낙연 캠프가 황씨에게 ‘친일 프레임’을 건 것에 대해 사과하고 내정에 대한 비판은 유지하는 선에서 물러서야 정리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같은 발언이 나온 지 반나절 만에 이 전 대표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희 캠프의 책임 있는 분이 친일 문제를 거론한 것은 지나쳤다고 본다”며 사실상 황씨에게 사과했다.

황씨가 그 전날(18일) 송영길 민주당 대표에게 “이 전 대표가 사과하도록 시키면 나도 사과할 용의가 있다”고 했었지만 정작 여당 대표도 아닌 방송인 김씨가 권고하자 이 전 대표가 먼저 황씨에게 사과한 셈이어서 여당 내 김씨의 영향력이 대선후보도 결코 무시 못할 수준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됐는데, 그가 적잖이 친문 여론을 주도해온 만큼 친문 동향을 의식한 이 전 대표가 결국 자세를 낮추게 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황씨는 JTBC 뉴스룸에 나와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권리 포기를 얘기하지 못한다”고 공언한 데 이어 심지어 이재명 캠프 총괄 특보단장인 안민석 의원까지 자진사퇴를 주문해도 YTN ‘이슈 인사이드’에 출연해 “안 의원은 경기도 의회 의원을 무시한 것이라 볼 수 있어 그 말 취소해야 된다”고 맞받아치며 자진사퇴에 선을 그은 것은 물론 이 전 대표의 사과에도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해 문제는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러자 이번엔 이 지사에 힘을 싣고 있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직접 나서면서 완고했던 황씨를 단번에 돌려세웠다.

이를 증명하듯 황씨 스스로도 19일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낙연 측에 끝없이 사과를 요구했는데 뜻하지 않게 이 전 대표의 위로를 받았다. 동지애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처음엔 울컥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고민하게 됐다”고 밝힌 데 이어 20일 자진사퇴 입장을 내놓은 페이스북 글에서도 “이해찬 전 대표가 저를 위로해줘 고맙다”고 거듭 이해찬 전 대표에 사의를 표했다.

실제로 지난 19일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이해찬 전 대표가 황씨에 대해 “선거에서도 민주당 승리에 여러모로 기여했는데 이번 일로 많이 마음이 상했으리라 생각해 정치인들 대신 원로인 내가 위로드리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는데, 어느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던 황씨조차 이해찬 전 대표와 전화통화를 한 뒤 사퇴 결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2선으로 물러났음에도 이해찬 전 대표의 여권 내 영향력 역시 여전히 상당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래선지 윤석열 캠프의 김병민 대변인은 20일 논평에서 황씨 사태 수습 과정을 꼬집어 “황씨가 스스로 물러난 뒤에도 뒷맛이 영 개운치 않은데 그의 질서있는 퇴진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정리된 것 같은 상황 때문”이라며 “복잡한 문제를 단칼에 풀어낸 주역은 이해찬 전 대표의 몫이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 같던 황씨에게 이 전 대표의 전화가 어떤 의미였을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만한데 이 전 대표가 친문 상왕에 그치지 않고 친명 상황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부각시킨 장면”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대변인은 방송인 김어준씨에 대해서도 “그가 방송에서 이낙연 캠프의 사과 필요성을 설파하자 이낙연 전 대표가 직접 황씨와 관련해 사과에 나섰다. 국무총리와 집권당 대표를 지낸 대권주자조차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팬덤정치의 위력을 다시 한 번 과시한 셈”이라며 “지난 4·15 총선 이후 국회의원에 당선된 여권의 여러 정치인들이 앞다퉈 김씨를 찾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황씨 인사 파동은 이재명식 인사 철학을 선명히 보여주는 예고편에 가깝다. 그가 정권을 잡게 되는 순간 지금 잠시 한 발 물러선 황씨는 보이지 않는 손들과 함께 더 큰 무대로 화려하게 복귀할지 모른다”며 “이 지사는 황씨 자진사퇴로 인사 파동 사태를 어물쩍 넘어갈 게 아니라 본인의 지사직 사퇴를 통해 지사찬스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더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손들이 대선을 앞두고 경기도 인사권자 뒤에 숨어있을지 국민 걱정이 크다”고 이 지사에 지사직 사퇴까지 요구했다.

한편 황씨 내정 사안과 관련해 그간 말을 아끼던 이 지사는 황씨가 자진사퇴 입장을 밝히자마자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친일파로 공격당하며 친분에 의한 내정으로 매도당한 황선생님의 억울한 심정을 이해한다”면서도 “황 선생의 결단에 위로의 마음을 드린다. 경기관광공사에 적격자란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많은 분들의 의견을 존중해 사퇴 의사를 수용한다”고 황씨의 사퇴를 즉각 수용하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밝혀졌고 이재명 캠프 전략 담당인 민형배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님, 갈등 해소의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이 전 대표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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