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꾸지뽕 새순 따주기 작업 중

음양의 이치.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첫 번째 원리이다. 창세기 11절은 하느님이 태초에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고 되어있다. · · · · · · · 목이 각각의 이름을 갖기 전인 한 덩어리로 버물려 있던 카오스의 상태에서, 최초의 분절은 하늘과 땅이었다.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다. 다음날, 밤과 낮이라는 시간의 음양이 창조되었고, 육지와 바다라는 공간의 음양이 창조되었다. 그렇게 이 세상 만물은 음양의 이치에 의해 창조되었다.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이미 동양에서는 우주창조와 우주운행의 원리를 음양의 조화로 파악하였고, 우리나라 태극기와 천(·), (), (l)을 기본으로 하는 한글도 이 원리에 의하여 만들어 졌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분간하기 어려운 혼돈 속에 처하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 닥치면, 이 음양의 이치를 생각해 보며 길을 찾을 수 있다.

처음 먹어보는 과일 앞에서 망설여진다면, 딱딱한 수박 속에 부드러운 속살이 있고, 부드러운 복숭아 속에 딱딱한 씨가 있다는 것은 경험했기 때문에 알지만, 경험하기 전에 파악해야 하는 인간관계에서도 이 음양의 원리는 유효하다. 마치 사막에 가보지 않더라도 그 곳에 사는 식물인 선인장 속에는 물기가 가득하며, 습지에 사는 버섯은 아주 건조할 것이라는 것처럼, 겉으로 거칠고 쌀쌀맞은 사람에게도 가슴 속에 따스한 인간미가 있을 수 있고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사람의 내면에도 매정하리만큼 차갑거나 혹은 불같은 성미가 존재할 수 있다.

 

음양의 이치로 보면 대상의 한 부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를 짐작하게 된다. 자연을 대하고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 지고 조금씩 통찰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빛 속에는 빛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둠 속에는 어둠만이 있는 것은 아니며 빛과 어둠은 서로 교대하며 흘러가고 있다.

 

그러므로 인생의 봄도 인생의 겨울 지나 반드시 온다. 음양의 이치로 보건데 계절처럼 인생도 시련의 계절이 지나면 따스한 축복의 계절이 오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 시기와 강도에는 완급과 강약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태도는 사실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난이 있지만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농부는 겨울동안 씨앗을 갈무리하고 밭의 잡초와 해충을 없앤다. 봄맞이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이 인생의 겨울을 잘 보내고 있는지 반성해 보며, 새 마음으로 봄맞이 준비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화창하고 풍요로운 내 인생의 봄날은 반드시 다시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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