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자꽃과 비파열매

 

산길을 걸으며 발길에 툭툭 차이는 풀 한 포기가 왜 그곳에 있는 지, 그가 무엇을 열망하며 자신의 삶을 키우고 있는지, 그가 어떤 고난을 만나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우리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은유를 전달하고 있다. 아무리 볼품없는 생명일지라도 이유 없는 생명이 없으며, 의미 없는 생명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저 누추해 보이는 잡초하나도 볼품없는 나무 한그루도 이유 없이 자라는 생명은 없다. 자신의 뿌리를 뻗고 키를 키우고 꽃을 피우느라 고단하지 않는 초목이 없다.

 

평생 뿌리를 내리고 같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초목들의 삶은 가히 숙명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멋대로 살다가진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숙명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초목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한 알의 씨앗이 떨어진 그 자리를 수용하고 떡잎을 틔우고 어린 줄기를 뻗어 가지를 만들어 나무가 된다. 그 어린 나무는 다시 줄기에서 가지를 내고 잎을 내며 큰 나무로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모양을 갖춰 나간다. 거치면 거친 대로 바위틈이면 바위 틈바구니에서 그리고 경사진 개울가에서도 제 삶을 시작하고 완성해 가는데 최선을 다한다.

 

나무나 인간이나 태어난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모진 시대에 험난한 공간에서 태어난 생명들은 더욱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무와 작은 풀꽃 등은 그 모든 제약 속에서도 제 씨앗을 터뜨리고 꽃을 피우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더욱 분발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각자 살아갈 방도를 발견하고 그 방도를 선택하며 실천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비록 넓은 공간에서 마음껏 가지를 뻗으며 자라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의 제약을 이겨내고 조화를 찾아내고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극복하는 자만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만일 때, 숲을 거닐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각양각색의 나무들과 어린 야생화들이 자신이 살아가야 할 환경을 이해하고 살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여건 속에서도 힘차게 살아내는 생명의 힘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꺽인 무릎에 힘을 주어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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