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지원 대상·방식 고집 않겠다”…靑 “국민 의견 귀 기울이는 건 환영할 일”

(좌측부터) 문재인 대통령, 홍남기 경제부총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사진 / 땡큐뉴스DB, ⓒ청와대
(좌측부터) 문재인 대통령, 홍남기 경제부총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사진 / 땡큐뉴스DB, ⓒ청와대

[땡큐뉴스 / 김민규 기자] 기획재정부 해체까지 거론하며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라고 문재인 정부를 거세게 압박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갑자기 “지원의 대상과 방식을 고집하지 않겠다”며 물러난 모습을 보여 결국 끝까지 버티던 문 정부에 백기를 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전국민’ 방점 찍던 李, 갑자기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부터”로 선회

이 후보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야당이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하고 있고 정부도 신규 비목 설치 등 예산 구조상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어 아쉽다. 현장은 다급한데 정치의 속도는 너무 느리다”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각자의 주장으로 다툴 여유가 없다. 지금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어렵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합의가 어렵다면 소상공인, 자영업자 피해에 대해서라도 시급히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우선순위를 전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이 아니라 소상공인, 자영업자 피해 지원 쪽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그는 “윤석열 후보도 50조원 내년도 지원을 말한 바 있으니 국민의힘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빚내서 하자는 게 아니니 정부도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며 “당장 합의 가능하고 실행 가능한 방법이라면 뭐든지 우선 시행하는 게 옳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는 추후에 검토해도 된다”고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이 후보가 갑자기 논의의 중심을 더 이상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야당도 주장한 선별 지급 격인 소상공인, 자영업자 손실 보상으로 옮긴 데에는 여론이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에 적극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데다 이 후보의 지지율 역시 지지부진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한편에선 그보다 현재 권력인 문재인 정부와의 기싸움에서 차기 권력인 이 후보가 밀린 결과란 관측이 더 힘을 얻고 있다.

당초 이 후보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 대한 여론의 시선이 미지근한 상황임에도 연일 정부를 강하게 몰아세우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후보가 돌연 “고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기 직전인 같은 날 오전만 해도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5~17일 전국 유권자 1004명에게 실시한 차기 대선 4자 가상 대결(95%신뢰수준±3.1%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36%, 이 후보 35%로 초접전 양상이 됐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기에 단지 국민 여론이나 후보 본인 지지율을 의식해 물러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선 19일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나와 이 후보의 전국민 재난지원금 철회에 대해 “국민들 의견에 귀 기울이고 더 나은 공약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며 국민 여론을 의식해 이 후보가 입장을 바꿨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는데, ‘이 후보의 철회로 청와대가 갖고 있던 정치적 부담이 해소됐느냐’고 묻는 질문엔 “청와대가 일일이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고 답했으며 ‘예산 문제로 불거진 당정갈등을 청와대와 문 대통령이 방관하고 있단 지적에도 “정부가 편성해 국회로 이미 넘긴 사안이고 국회 심사 과정이 남아있어 청와대가 지시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응수했다.

◆ 李가 때리던 홍남기 칭찬한 文 대통령…李, 靑 개입에 꼬리 내렸나

자칫 대선 개입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질까봐 이처럼 청와대는 내내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 전국민 재난지원금 문제로 격화된 당정갈등에도 지켜왔던 침묵을 깨고 이 후보의 입장 선회에 “환영할 일”이란 반응을 내놓은 자체가 사실상 선거를 앞두고 있어 표면적으로 불편한 심경을 표현하지 못했을 뿐 문 정부를 압박하는 이 후보의 태도에 못마땅해 하고 있었음을 박 수석이 에둘러 내비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여부를 놓고 이 후보와 재정당국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던 지난 17일 여당 중진인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BBS라디오에 출연해 “정부와 여당 간 이견 또는 갈등을 해소하는 리더십은 대통령 또는 청와대가 발휘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먼발치에서 불 보듯 구경해선 안 된다”며 “조율하고 끝까지 맞춰 가는 노력은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해야지 오히려 안 하는 게 책임을 회피하고 방기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소극적이고 무기력할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는데, 이 발언 바로 다음 날인 18일에 이 후보가 “고집하지 않겠다”고 꼬리를 내렸다는 점에서 결국 청와대가 나섰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미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청와대가 당정 조율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당정 간 원만하게 의견을 조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같은 날 MBC라디오 인터뷰에선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청와대가 조정할 사안이 아니고 공은 국회로 넘어가 있으며 여야가 논의해야 한다”고 상반된 발언을 내놨던 점에 비추어보면 공식적으론 개입하지 않겠다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청와대가 당정 간 의견 조율에 들어갔던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특히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이 후보가 그토록 비판한 홍남기 경제부총리에 대한 문 대통령의 반응인데, 홍 부총리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근거로 정부의 적극적 역할 덕분에 소득 분배가 대폭 개선됐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앞으로도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경감하는 포용적 회복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 증가 노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겠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소상공인 손실보상에 더해 손실보상 비대상 업종에 대한 지원방안도 신속히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의 해당 SNS 글을 소개하면서 “매우 기쁜 소식을 공유한다.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이런 좋은 성과가 앞으로 4분기를 넘어 지속되고 국민 삶의 향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 입장을 내놨는데, 전국민이 아니라 취약계층이나 소상공인 등 선별대상 지원에 방점을 둔 홍 부총리의 주장에 사실상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여 결국 청와대도 이 후보보다 홍 부총리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홍 부총리에 대해 국정조사 가능성까지 내비치던 민주당 지도부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가 지난 18일 오후에 갑자기 자세를 낮춰 “전국민 재난지원금 합의가 어렵다면 소상공인, 자영업자 피해에 대해서라도 시급히 지원에 나서야 한다”며 사실상 홍 부총리 주장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보이는데, 비단 정치적 차원 뿐 아니라 법리적 측면에서도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는 헌법 제57조 탓에 이 후보가 홍 부총리의 반대를 묵살한 채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요구를 무작정 밀어붙이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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